초등학생 학급회의가 ‘시민과학’으로 이어지다
사회현상이나 정책에 관련된 과학적 연구 대부분 정부 용역이거나 과학자들 주도로 시작되는 것과 달리 이번 가림막 연구·조사는 송중초 학생들이 “정말 가림막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시작했다. 학생들은 학급회의를 통해 방역상 가림막의 필요성을 토의했는데, 이 과정에서 다양한 불편이 터져나왔다.
‘유자학교(유해물질로부터 자유로운 건강한 학교)’ 활동을 하고 있는 배성호 교사가 학생들이 겪고 있는 불편을 듣고,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과학적 연구·조사를 요청하면서 소음 및 인식 조사가 실현됐다. 시민 요구를 과학자가 받아안고, 시민과 함께 연구·조사해 그 성과를 공유하는 방식의 ‘시민과학’이 송중초와 서울대 사이에서 이뤄진 것이다. 유자학교는 초등 교사들과 아름다운재단, 사단법인 일과건강,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등이 안전하고 건강한 교육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캠페인이다.
학생들이 연구·조사 결과를 본 뒤 만든 학급신문과 의견서에도 “가림막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부터 “그래도 가림막 덕분에 코로나 예방이 가능했다”, “가림막의 단점 중 하나는 환경에 안 좋은 플라스틱이라는 것”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개운초등학교 이진수 교사는 동일한 방식의 인식 조사를 자신의 학급에서 실시한 결과를 소개했다. 더 많은 학생들이 가림막으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사에 따르면 ‘소음으로 인해 불편하다’고 응답한 학생은 약 95%, ‘칠판이 잘 안 보인다’와 ‘소리가 잘 안 들린다’는 응답은 각각 76%와 67%였다. ‘다친 경험이 있다’고 답한 학생은 81%로 대부분 학생이 가림막 때문에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설치한 가림막이 학생들에게 불편을 주고 수업권을 침해하고 있지만 교육당국에는 뚜렷한 가림막 지침이 없다. 서울시교육청이 2020년 5월 발표한 ‘코로나19 관련 학교 방역 기본 대책’에는 ‘수업 시 가림판 치우고 마스크 착용’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는 학교별로 가림막이 설치된 곳과 아예 설치하지 않는 곳 등이 혼재돼 있다. 학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은 송중초 사례처럼 가림막으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작 가림막에 대한 인식조사나 실태조사는 이번 조사 이전까지는 이뤄진 적이 없다.
학교 현장에서는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 급식실은 가림막이 필요하지만 교실에서는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기 때문에 방역 효과가 제한적이지 않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가 버지니아공대, 존스홉킨스대 연구진 등을 인용해 교실 내 가림막이 공기 흐름을 방해해 오히려 감염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가림막이 비말 차단에는 효과가 있지만 공기 중 입자를 차단하는 효과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원장인 이기영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이날 좌담회에서는 지난달 실시한 소음 측정 결과와 학생들의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가림막이 바닥에 떨어질 때 발생하는 소음을 측정한 결과, 철로변이나 지하철보다 심한 데다 소음이 심한 공장 내부와 비슷한 수준의 소음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은 책상에서 가림막을 3번 반복해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실험 결과 평균 94.1㏈(데시벨) 소음이 발생했다. 이는 철로변 및 지하철 소음 수준인 80㏈은 물론 정도가 심한 공장 내 소음인 90㏈보다 심각한 수치였다. 80㏈이 넘는 소음에 만성적으로 노출되면 청력 장애가 시작된다. 노출되는 소음의 정도가 90㏈이 넘을 경우에는 직업성 난청이 시작되며 소변량이 증가하는 등 부정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학교보건법은 교실 내 소음을 55㏈ 이하로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